Summary:
쿠바 유기농 혁명
담당 : 임종빈 순회 특파원
1990년대 초 밀과 쌀을 헐값에 지원해주던 구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고 있던 쿠바에는 갑작스런 식량 위기가 닥쳤다. 더 이상 농약과 화학 비료를 구할 수 없게 된 쿠바 정부는 무공해 농약과 유기 비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1년 만에 쿠바 농지의 절반이 유기 농법으로 전환됐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로 농촌 인구가 계속 줄어들자 정부는 쓰레기장과 공터에 도시 농장을 조성했고, 도시 농장 생산량이 한때 전체의 70%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최근 조사에서 도시 농부의 90%가 농사를 짓겠다고 답했으며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코히바 시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며 인정받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세계 농업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쿠바의 유기농 혁명을 취재했다.
천연 농약과 지렁이 농법
쿠바 관광의 명소 ‘비냘레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코히바 시가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하다보니 벌레가 많은 여름철에는 아예 담배 농사를 금지하고 있다. 한 과일 밭에는 벌레를 쫓는 독한 향의 ‘님’이라는 풀과 박테리아를 혼합해 천연 농약으로 쓰고 지렁이를 이용해 유기 비료를 만든다. 가축 분뇨와 낙엽을 섞은 흙 1㎡당 1kg의 지렁이를 풀어 넣고 석 달을 기다리면 지렁이 분변토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바나나 나무의 낙엽을 석달 동안 발효시킨 ‘콤푸스’를 섞으면 최고의 유기 비료가 완성된다. 화학 비료와 농약이 없이도 유기농법으로 잘 재배된 쿠바의 농산물은 세계 유기농업계의 표본이 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90년대 갑자기 닥쳐온 쿠바의 식량 위기로 밀과 쌀은 물론, 비료와 농약의 수입이 80%나 줄어들었다. 쿠바 정부는 농약과 화학 비료가 없이도 식량을 생산해내는 방법과 기술이 절실했고, 농업 과학자들은 땅 속의 박테리아를 이용한 유기농법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결과 박테리아는 세균과 벌레를 퇴치하는 동시에, 식물 생장에 반드시 필요한 질소와 인을 만들어내는 비료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천연 농약과 유기비료 연구가 성공하자 쿠바 정부는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도시에도 농장을 조성했고 결국 식량 자급자족의 꿈을 이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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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이방인, 이주 농민들
담당 : 김기용 순회 특파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는 학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낡은 농민공 학교들이 많이 있다. 농민공이란 농촌에 호적을 두고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뜻하는 말로 그 자녀들은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열악한 사설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이 밖에도 농민공은 의료와 사회보장 면에서도 도시 주민과 차별을 받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중국의 사회주의적 통제제도인 호구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전 국민을 농민과 시민으로 구분하고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막고 있는 호구제도는 인구증가와 도시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그 결과 도시로 이주한 농촌 출신 어린이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현대판 신분제, 호구제도에 우는 이주 농민들을 밀착 취재했다.
농민공 학교
중국 베이징시 해정구에 위치한 타오웬 농민공 학교는 언뜻 우리나라의 70년대 모습을 하고 있다. 비좁은 운동장과 조악한 체육시설은 물론 더운 여름에도 교실의 고장난 선풍기는 작동하지 않고 다 낡아버린 탁구대는 수십 명이 동시에 사용해야한다. 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약 4백 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농민공의 자녀다. 공립학교는 베이징에 호적을 둔 학생만을 입학시키기 때문에 농민공 자녀들은 열악한 사립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교육뿐만 아니라 의료나 사회보장, 정부 서비스 또한 도시와 농촌을 구분해 제공한다. 이 때문에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은 사회 보장의 사각 지대에서 열악한 삶을 꾸려갈 수 밖에 없다.
호구제도
중국의 독특한 호구제도는 1958년, 농민의 이주를 금지하고 한 가정에 한 자녀만 호적에 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자녀를 더 낳을 경우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가정에서는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6월 중국 정부는 11월에 실시하는 총인구조사에 앞서 호적이 없는 아이들의 호적등록을 허가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농민공들은 호구제도에 매여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